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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다이어리

시골내음이 열심히 농사지으며 농산물을 가공하는 소박한 농촌의 모습을 사장님다이어리 코너에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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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평짜리 가공소에서 만들어 낸 애교복숭아의 기적!
작성자 시골내음 (ip:)
  • 작성일 2020-04-01 19: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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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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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귀농귀어 박람회를 일주일 정도 앞두고 지인의 제안으로

귀농사례공모전에 원고를 넣게 되었습니다.

농사일에 바쁜 시기였지만 밤을 세워가며

나의 귀농이야기를 원고에 담아 제출했고

코엑스에서 열린 행사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습니다.  


귀농 후 시골내음이 겪어 온 힘들었던

이야기와 같이 엮어 낸 짧은 이야기....

어떻게 첫눈에반한생생복숭아즙이

국내최초로 세상에 탄생하게 되었는지 한번 읽어 보시겠어요??




제 목  3평짜리 가공소에서 만들어 낸 애교복숭아의 기적! 


아무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애교복숭아를 활용해 3평짜리 가공소에서 만들어낸

국내 최초 복숭아생즙의 기적에 대한 땀과 노력의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그동안 누구도 만들어내지 못했던 복숭아생즙! “첫눈에반한생생복숭아즙이 대한민국에 태어나

인근농가와 상생하며 세상을 놀라게 했던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꿈을 가지고 결심한 귀농

 

여보, 농장이름 시골내음 어때?”

~, 정겹고 좋은데....”

 

내가 귀농을 결심한 이유는 단 한가지, 아이문제였다.

서울에서 맞벌이를 하던 우리부부는 아들의 초등학교 입학을 3년정도 앞두고 고민이 생겼다.

가족의 행복을 위해 맞벌이를 하는데 어린 지식을 키우는 직장동료들의 맞벌이 생활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고

나는 그 동료가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나는 내 아이를 자연에서 키우고 싶어졌다.

나는 아내를 설득했고 아내와 나는 사직서를 제출하고 아내의 나이 스물아홉,

내 나이 서른여섯살이 되던 20085월의 봄날, 나는 충주로 귀농을 했다.

농대를 졸업한 나는 아버지께서 농사지으시던 복숭아과원을 이어받아 농사를 시작했다.

내려올 때 가져 온 전세금은 집을 고치고 경운기와 관리기 등을 구입했다.

우리 부부는 농업기술센터에서 복숭아교육을 받아가며 열심히 농사를 지었다.

수확한 복숭아는 충주로 귀농하기 1년 전부터 직장생활을 하며 밤늦게까지 책을보며

독학으로 공부해 만든 개인쇼핑몰로 소비자 직거래를 했고 농산물쇼핑몰이 많지 않았던

2008년에 온라인 판매를 시작하며 애교복숭아까지 농사지은 복숭아는 모조리 택배로 판매할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의 귀농생활은 행복이라 말할 수 있었고 이미 마음의 부자가 되어 있었다.

 



아들의 심한 변비, 해결책은 복숭아

하지만 한가지 고민이 있었다.

6살 아들이 변비가 점점 심해져 병원과 한의원을 번갈아가며 약을 써 보았지만

효과는 일시적이었고 화장실가기가 두려워진 아들은 급기야 음식을 먹지 않기 시작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복숭아철이 되자 그 심하던 변비가 감쪽같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아내는 내게 1년내내 아들에게 먹일 복숭아음료를 만들어 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다.

나는 아들의 변비를 없애기 위해 창고를 보수했고

건강원 재료상에서 착즙기와 포장기를 들여놓고 복숭아즙 짜는 방법을 배워 농장에서

수확한 복숭아로 복숭아즙을 만들었다.

 



복숭아즙 개발 도전기

나의 첫 복숭아즙을 맛본 아들은 인상을 쓰며 다시는 복숭아즙을 먹으려 하지 않았다.

이 복숭아즙을 먹어야 변비가 없어진다고 얼르고 달랬지만 아들은 입을 꾹 다문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내는 나를보며

여보, 이 복숭아즙 어른인 나도 마시기 힘들어~” “

복숭아는 맛있는데 왜 복숭아즙은 맛이 없을까?”라고 말했고

 

나는 복숭아즙 맛이 다 그렇지 별달라!” 하며 쏘아붙이듯이 말했다.

아내는 다시 입을 떼며

여보 복숭아즙을 복숭아를 먹는 것처럼 맛있게 만들 수는 없을까? 당신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당신은 창의적인 남자잖아~ 아들을 위해 한번 도전해 봐~”

 

나는 중탕추출방식 말고 녹즙처럼 즙을 만드는 방법을 찾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건강원 기계를 취급하는 곳을 여러곳에 전화를 해 보았지만

한결같이 복숭아는 불가능하다’, ‘그런 기계는 없다라는 대답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국내에서 유일하게 녹즙기를 만드는 공장을 찾게 되었다.

공장에 전화를 걸었고 공장관계자는 불가능이라는 대답을 건넸다.

실망이 이만저만이 이이었다.

인터넷을 통해 외국의 사례를 찾아보려 해도 외국 역시 사례조차 찾을 수 없었다.

그날부터 낮에는 농사일을 하고 어두워지면 창고에 불을 켜고

복숭아 맛이 그대로 살아있는 복숭아즙을 만들기 위해

오로지 수작업만으로 수확한 복숭아 중 애교 복숭아로 실험을 시작했다.

도서관을 찾아 복숭아에 관한 온갖 책을 빌려 읽기 시작했고

인터넷을 검색해 세계 각국의 복숭아즙에 대한 자료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복숭아에 대한 공부는 많이 했지만 복숭아즙을 맛있게 만드는 기술은 어느나라 자료에서도 찾기 어려웠다.

결국은 독자적으로 연구하고 개발해야 하는 상황에 닥쳤다.

나는 기존의 복숭아즙 제조방법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느꼈고

첫 설정부터 완전히 다른방법을 연구하고 도전하기 시작했다.

복숭아즙을 만드는 과정에는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과즙처럼 단순한 과정으로는 생즙을 만들어 낼 수가 없었다.

우선 세척과정부터 문제였다.

복숭아알러지의 가장 대표적인 물질인 복숭아 표면에 붙은 털이었다.

대부분의복숭아는 쉽게 물러지고 표면이 털로 뒤덮인 유모계 복숭아라 이를 우선 제거해야 했다.

하지만 복숭아에 손상을 주지 않고 털을 100% 제거할 수 있는 세척기는 없었다.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복숭아씨였다.

내가 알고 있는 복숭아는 수분이 많아 피부미용에 좋고 간기능을 활발하게 하며

대장암 예방에도 좋으며 니코틴 제거 효과가 있어서

흡연하시는 분에게 도움이 되고

피를 맑게 하고 위장기능 개선과 변비 해소에 좋다고 알고 있는데

문제는 도인이라고 불리는 복숭아씨의 독성분이었다.

복숭아씨에는 아미그달린, 흔히 청산가라고 불리는 독성물질을 포함하고 있는데

소량 먹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소비자의 불안함을 해소하고 안정성을 확보를 위해

복숭아씨는 과일음료를 만들 때 무조건 제거해야 하는 대상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더구나 복숭아를 잘라보면 씨 주변에 곰팡이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

통복숭아를 이용해 그대로 복숭아즙을 만들면

곰팡이가 만들어낸 독성물질은 그대로 인체에 흡수되어

오히려 건강을 해칠 우려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복숭아씨 제거를 위한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복숭아즙 개발에 가이드라인을 정하고 실험을 시작했다.

실험에 사용한 복숭아를 600Kg쯤 폐기했을 무렵 답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약맛이 나던 나의 복숭아즙에서 복숭아 맛이 향긋하게 올라오기 시작했다.

 

!! 성공이다!!”

나는 머리끝이 뾰족 서는 짜릿한 기분을 느꼈다.

모두가 잠든 밤, 나는 희열과 기쁨에 한숨도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아내와 7살 아들이 아침에 눈을뜨자마자 제일 먼저 아들에게 어제밤 내가 만든 복숭아즙을 선보였다.

아들은 폴짝폴짝 뛰며 맛있다! 맛있다!를 반복했다.

복숭아즙을 맛 본 아내도 감탄하며 여보, 당신이 만든 복숭아즙, 세상에서 처음 먹어보는 최고의 맛이야!”

그동안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복숭아생즙!

내 손으로 만들어 낸 복숭아생즙의 새로운 탄생에 내 자신이 한없이 기특하기만 했다.

복숭아는 수확량의 30% 이상이 B급일 정도로 비품비중이 높은 과일이다.

그래서 복숭아 생즙의 개발은 나에게 새로운 시장의 문을 열어 줄 획기적인 기회였다.

 



100년만에 찾아온 한파, 나의 역경이 되다.

그렇게 추운 겨울을 보내고 이듬해 봄이 되었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워 ‘100년만에 찾아온 한파라며 뉴스에서도 시끌시끌했다.

복숭아나무가 동해를 입었다느니 매실나무가 다 죽었다느니 주변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가 들렸다.

그러나 우리집 복숭아나무는 감사하게도 모두 예쁜 분홍빛 꽃을 피웠고 복숭아도 열렸다.

우리부부는 복숭아밭에서 준비한 도시락도 먹으며 적화작업과 적과작업도 마쳤다.

 그런데 6월이 되자 초보농사꾼의 눈에 이상한 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잎이 시들어 떨어지기 시작하는 나무들이 여기저기서 보이는 것이었다.

깜짝 놀란 나는 충주시농업기술센터에 긴급하게 방문을 요청했다.

복숭아과원을 방문한 지도사께서 올겨울 한파로 인한 동해라고 진단을 내리셨다.

그 후로 여름까지 절반가량의 나무가 고사하고 말았다.

그나마 달려 있는 복숭아도 상품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나는 망연자실, 주저앉고 말았다.

! 행복을 찾아 시골로 내려 온 우리 부부에게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하늘을 원망하고 또 원망했다.

그렇다고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수확하는 복숭아로 중 그나마 상품성이 있는 것은 인터넷쇼핑몰로 팔았고 복숭아를 팔았다.

예약손님들은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복숭아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런데 한통 두통 전화문의가 오기 시작했다.

 

복숭아즙 혹시 파시는 건가요?”

복숭아즙 살 수는 없나요?"

"너무 맛있어요!”

 

복숭아를 판매하며 몇 팩 씩 끼워서 보내드린 복숭아즙을 드셔보신 고객분들의 전화가 오기 시작한 것이다.

고객분들의 문의가 이어졌지만 3평짜리 가내수공업 수준의 창고에서 소량 만든 제품이라 판매는 꿈도 꿀 수 없었다.

제조시설이라고는 추출기 한 대와 포장기 한 대가 전문이고 더구나 제조허가도 없이 제품을 판매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더구나 국내에 복숭아생즙을 가공할만한 기계도 없는 시점에서 유통을 꿈꾼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기계개발을 생각할 자금도 없는 상황이라 내겐 희망의 꿈조차 사치였다.

 



추운 겨울, 그리고 다시 핀 봄날의 여린 잎새

그해 겨울, 우리 부부는 100년만에 찾아온 한파보다 더 추운 겨울을 보냈다.

집수리와 농기계 구입 등으로 자금을 모두 써버린 데다가 동해로 인해 복숭아나무가 죽어 수입까지 형편없었다.

더구나 복숭아는 묘목을 다시 심어 수확하는데 까지 수년의 시간이 걸리는 작목이라 도저히 버틸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빈털터리로 아내와 함께 아들을 데리고

무작정 서울로 돌아간다는 것도 무섭고 두려운 일이었다.

자신감 하나로 아내를 설득해 시골로 내려와

이제 서른이 막 넘은 나이에 고생하는 아내를 바라보니 미안함에 가슴이 먹먹해 왔다.

이럴 때 일수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이렇게 슬퍼하고 자책하는 시간조차 내겐 낭비에 불과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밭에서 버려지는 상품에 가까운 복숭아를 수매해 복숭아생즙을 만드는 것뿐이라는

겨우내 고민한 나는 봄이 되어 복숭아생즙 가공 기술 하나를 가지고 충주시농업기술센터를 찾아갔다.

그리고 시범사업을 소개받아 공모를 했고 현장심사까지 통과하며 사업자금을 받았다.

너무나 감사하고 생명과도 같은 도움이었다.

내게도 한줄기 희망의 문이 열린 것이다.

하지만 자부담금이 문제였다.

시골로 내려오면서 자금을 다 써버린 나는 급기야 서울서 맞벌이하며 들어놓은 보험을 모두 해약했다.

그리고 아들의 통장에 한푼두푼 모은 세뱃돈까지 모두 끌어모아 자부담금을 만들었다.

그리고 제일 먼저 전화를 한 곳은 녹즙기공장이었다.

사장은 복숭아즙을 만들 수 있는 녹즙기 한 대 만들어 주세요!”

복숭아즙은 안된다고 했잖아요!”

나는 사장님께 내 사정을 말씀드렸고 연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렇게 준비한 자금으로 여름이 되어서야 작은 제조업소를 짓고 유통판매가 가능한 식품제조업 허가까지 받게되었다.

복숭아즙을 가공할 녹즙기는 3개월만에 완성되어 전기설비까지 마쳤고

그 사이에 그동안 연구한 복숭아씨를 제거하는 칼도 특수제작했다.

그동안 어디서도 보지못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칼이었다. 이 모든 과정은 과히 성공적이었다.

 



애교복숭아, 방문수거를 시작하다!

바쁜 일정속에 복숭아 수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8월이되어 우리지역의 복숭아농장을 찾아 다녔다.

어머님, 아버님, 안녕하세요~ 혹시 파시고 남은 잘생기고 예쁜 비품 복숭아 있으면 저주세요~ 제가 사갈게요!”

대부분의 애교복숭아는 판로를 찾지 못해

밭에서 그대로 버려지기가 일쑤인 과일이라 어르신들께서는 아주 흡족해 하셨고 소문이 동네에 퍼졌다.

복숭아는 쉽게 무르고 농협에 복숭아를 출하하는 데에도 하루가 빠듯하기 때문에 애교복숭아 처분은 농가에서 반가운 소식이었다.

농가에서 복숭아선별이 끝나면 나에게 전화가 온다.

연사장~ 복숭아 가지러 와~”

~ 아버님, 지금 가겠습니다!”

전화를 받은 나는 덜덜대는 트럭에 상자를 싣고 아내와 함께 농가로 향한다.

그 자리에서 애교복숭아 중 복숭아생즙으로 가공이 되는 복숭아를 다시 선별해 그 자리에서 현금을 드리고 가져온다.

애교복숭아라고는 하지만 사실 문제가 있는 복숭아는 밭에서 떨어지고

농부의 손으로 수확해서 가져온 복숭아는 대부분 정품에 가까운 B급이다.

농협에서는 잘생기고 예쁜 복숭아만 취급하기 때문에 나머지는 나의 몫으로 돌아온다.

그렇다고 무조건 다 가져오는 것은 아이다.

낙과와 과숙과처럼 품질이 떨어지는 복숭아는 가져오지 않는다.

농가에서 새벽같이 복숭아를 수확 후 선별이 끝나면 점심 무렵 복숭아를 가지러 가는데

이렇게 방문해서 수거한 복숭아는 24시간 내에 가공에 들어간다.

장날 복숭아농장 어르신들을 만나면 환하게 웃으시며 아무데도 팔 곳이 없는 복숭아를 팔아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건네시며 방학 때 놀러온 손주녀석들, 용돈도 주고 간식도 사줬다며 흐뭇해하신다.

그러면서도 노파심에 한마디 건네신다.

 

연사장~ 내 복숭아 계속 가져갈거지? 가져 가야돼~ 고마워~”

 

나는 어르신 별말씀을요~ 제도 고맙습니다, 내년에 뵐게요~”

라고 겉으로 말했지만 난 어르신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어르신 저와 제 가족 살려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저에게 복숭아를 팔아주셔서...’

 

 



저의 꿈은 아빠처럼 농부가 되는 것입니다!

 

20113, 귀농할 때 다섯 살이던 아들이 초등학교 입학을 한다.

시골학교지만 입학생이 21명으로 많지는 않았지만 제법있었다.

입학식이 진행되는 도중 아이들을 한명한명 소개하며 장래희망을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장래희망은 선생님, 축구선수, 과학자, 연예인 등 내가 어릴 때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아들이 앞에서 인사를 하고 영상에 나온 아들의 장래희망은 아빠와 같은 농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농사가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데...”

어린애가 뭘 안다고 꿈이 농사꾼야~”

 

나는 일어서서 아들을 향해 큰소리로 한참동안 박수를 쳤습니다.

사람들은 일제히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날 나는 아들의 꿈을 위해 다시한번 꼭 농촌에서 성공한 귀농인이 될 거야...

 나 자신에게 다짐하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습니다.

엄마, 아빠를 따라 복숭아과수원에 쫓아 다니던 그 아들은 어느새 중학교 3학년이 되었다.

지금은 전교학생회장에 선출되어 늠름한 아들로 성장하고 있다.

그리고 아들의 꿈은 아직도 변함없이 아빠의 가업을 이어 농촌에서 6차산업을 하는 농부가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아들에게 훌륭한 농부가 되려면 공부도 열심히 해야하고 사회생활도 경험해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국내최초, 첫눈에반한생생복숭아즙 세상이 태어나다!

 

 

 



귀농이 선물해준 또 하나의 아들

지금 나에게는 두명의 아들이 있다.

둘째는 귀농해서 낳은 아들이다.

서울에서 맞벌이 할 때에는 둘째는 생각도 못했는데

귀농이 우리 가족에게 소중한 둘째를 선물해 주었다.

벌써 초등학교 3학년에 되는 둘째는 늦게서 낳은 자식이라서인지 자는 모습을 봐도

장난기 넘치는 모습을 봐도 마냥 행복함이 밀려온다.

 

여보 둘째 자는 모습만봐도 저렇게 예쁜데... 우리 귀농 안했으면 어쩔 뻔 했어~ ”

그러게요~”

 

나와 아내가 곤히 잠든 둘째를 보며 하는 말이다.

우리 부부에게 귀농이란 선택이 안겨준 소중한 생명, 나의 귀농은 누구보다 각별하고 다시 생각해도 후회없는 선택이었다.

 

 

 

 

 

 

 

키워드로 보는 나의 귀농이야기

# 100년만의 한파

복숭아나무 동해피해

복숭아생즙 최초개발

대기업비서실에서 걸려온 전화

국가대표선수촌에서의 주문

8년째 복숭아즙을 드시는 고객

고객에게서 배송 온 장갑과 목도리

농사를 도와주겠다고 찾아온 일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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